부활2 (2012.4.8)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은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러시아에 네프류도프 라는 젊은 공작이 있었다. 이 공작이 재판에 배심원으로 앉아 있는데 한 매춘부가 돈 많은 남자를 독살하였다는 협의로 재판정에 끌려 나왔다. 그런데 네프류도프 공작은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녀는 예전에 자기 집에 하녀였던 카투사였다. 그가 그녀를 유혹하여 범한 뒤에 백루불의 돈을 주고 내보낸 여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 공작의 아기를 배고 먹고 살기가 힘들자 자포자기 상태에서 타락하여 매춘부로 일을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네프류도프공작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 유산도 약혼도 파기하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끝가지 그녀를 따라 간다. 결국 네프류도프의 헌신과 희생적인 사랑이 그녀로 하여금 매춘의 죄악 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한다.
나는 고교시절 이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그렇지만 톨스토이가 말하는 부활은 사랑의 부활이지 기독교적 생명의 부활이 아니어서 실망했다. 오직 예수님의 부활만이 진정한 부활이다. 이것은 이론이나 철학이 아니다. 실제 역사적인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예고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한다.
지난 3월 15일 이어령 박사의 장녀 이민아변호사(목사)가 54세의 일기로 소천 했다. 그녀는 한 때 김한길씨의 아내였다. 그녀는 위암 말기로 올해 초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에도 상태가 호전돼 청년신앙세미나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천국으로 떠났다. 이 목사는 실명 위기에서 기적의 치유를 통해 아버지 이어령 박사를 회심시키며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끌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 ‘성서 스토리텔링’ 대담에서 진행자인 이재철 목사는 “이어령 선생님께서 사랑하는 따님을 먼저 보내셨는데, 몇 년에 걸쳐 따님과 손자를 다 하나님 나라에 보내셨습니다. 옛말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돌아가면 마음속에 묻는다는데, 선생님께서 믿음으로 잘 받아들이시겠지만 아버지로서 애통함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습니다.” 라고 위로하자. 이어령 박사는 “기독교인으로서 육체를 떠나면, 오히려 죽음이 그 아픔을 치유하고 하나님 곁에 가는 거니 오히려 축복 아니냐 라는 말씀을 크리스천들이 가끔 하시는데 그건 그렇지 않다”며 “죽음은 참 슬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 분이 가깝게 느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렇게 슬프면서 우리 대신 속죄하시는 그 사랑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며 그는 “육체라는 것, 생명이라는 것, 아파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육신을 가진 생명, 친구와 자식, 부모가 그렇게 소중하니 영생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숨을 거두고 곁을 떠나기보다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수 있는 것, 이 박사는 지금도 딸이 “아빠 아파” 라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했다.
이어령 박사는 죽는 게 복잡할 것이 없다며 휴대전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은 채 딸이 휴대전화 번호에 저장되어 있지만 이야기할 수 없는 그것이 죽음”이라며 “아무리 떼를 써도 되지 않는, 이 죽음에서부터 종교는 시작된다”고 전했다.
이 박사는 “이번 죽음을 통해 느낀 것은 목숨, 생명, 육체를 가진 생명이 얼마나 황홀하고 찬란하고 사랑의 대상이며 우리에게 소중한 건지…” 라며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옆에 만질 수 있는 동생과 형, 오빠와 친구…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자랑스럽고 귀중한지 살아있는 사람은 모른다. 그 사람이 떠나봐야 안다”고 했다.
이 박사님의 깨달음처럼 살았다고 하는 것 참 소중하고 복된 것이다. 그렇지만 영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은총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이보다 더 큰 위로와 희망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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