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2016.3.20.)
지난 주간 안암동 고대병원에 갔다가 의과대학에 몸을 기증한 분들을 감사하고 추모하는 기념돌탑을 보았다. 돌탑에는 수백 명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感恩塔’ 誌銘
이 탑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헌체하신 분들의 숭고한 박애정신과 이타행위를 기리고, 그 교육적 효능을 길이길이 이어가고자 세운 것이다.
성스러운 유체는 가장 진실한 교재로 쓰여 의학지식을 정확히 하는데 이바지했으며, 거룩한 유지는 산 교훈으로 승화되어 인술정서를 함양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가장 고귀한 것은 생명이다. 따라서 이 생명을 지켜주는 것보다 더 은혜로운 것은 없다. 이 분들은 마지막 남은 몸마저 많은 생명들을 구하고자 바쳤으니 이는 천지생물지심을 구현한 활인공덕이 아닐 수 없다.
여기 탑 앞에 서는 이들이여, 옷깃을 여미며 경건한 마음으로 탑 돌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라! 몸은 산화하였고, 이름만 남았다. 그러나 이들의 거룩한 유덕은 영원토록 살아갈 생명들의 호신으로 영존하리라. 1999년 5월 18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건립’
돌탑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면서 숙연함을 느꼈다. 몸을 바쳤다고 해서 ‘헌체’라고 기록했는데 ‘헌신’과 같은 의미다. 그분들이 의학도들의 교재로 쓰임받기 위해 헌신하였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의술발전에 기여한 게 된다. 그분들의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바울사도주변에는 많은 헌신된 동역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헌신이다. 로마서16:3,4절을 보면 바울사도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감사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바울에 대한 헌신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다.
지난번 교역자 모임에 갔을 때 이용덕증경노회장님의 설교에서 한 동창목사님 이야기를 들었는데 감동적이었다.
그 동창 목사님은 간경화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마지막 이식수술만이 살 수 있는 길이었다. 교인들 중 목사님을 위해 기꺼이 간을 떼어 주겠다는 분이 열 두 분이 나왔다. 지원자가 많았지만 목사님의 둘째딸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나와서 둘째딸의 간을 이식 받게 되었다. 교인들이 수술비를 마련하고, 목사님을 위해 수술당일에는 전교인이 하루 금식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 목사님은 비록 간경화로 고생을 하셨지만 행복한 목사님이구나. 목사님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간을 떼어주겠다는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같은 성도들이 많으니 목회를 잘하셨구나.’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생명을 거는 헌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감동을 준다. 헌신하는 이들의 숭고한 뜻이 귀하고 아름답지만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에 비교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헌신하신 것처럼 성도는 주를 위한 헌신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엘리야에게 마지막 식량을 드렸던 사렙다 과부의 헌신,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헌신, 마리아와 요셉의 헌신, 오병이어를 드린 소년의 헌신 그들의 헌신은 헛되지 않았다.
어느 모임이나 초창기 밀알처럼 썩어지는 이들이 있어서 훗날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 된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이들이 많이 나와야 소망이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려는 이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래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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