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2016.1.3.)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정들이 있어서 보기에 흐뭇했다. 성탄절 새벽송처럼 최근에는 송구영신예배가 사라지고 있다. 0시전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고 아예 안 드리는 교회도 있다. 그런데 해 마다 돌아오는 신년예배에 꼭 참석하는 가정들을 보면 이미 문화로 자리 잡은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급한 마음에 새해축복의 말씀을 뜯어보는 이들도 있었다. 한 집사님은 9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다. 아예 축복성구를 담아 놓은 상자를 가지고 오셨는데 올해 뽑은 말씀이 작년의 말씀과 똑 같다고 하며 좋아하셨다. 송구영신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이 해 마다 나오는 것을 보면서 ‘우동 한 그릇’이 생각났다. “금년에도 북해정 음식을 먹을 수 있었네요”하며 엄마와 아들들이 만족해했듯이 새해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축복의 말씀을 뽑을 수 있었음에 뿌듯해 하는 것 같았다.
일본작가 구로 료헤이의 작품 <우동 한 그릇> 이란 동화는 일본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 삭막하게 변해 가는 인심 속에 그래도 소수의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심어준다는 감동적 스토리이다.
‘북해정’이란 국수집이 나오는데 큰 대목은 섣달 그믐날이다. 어느 날 남루한 차림의 어머니와 두 아들이 국수를 시켰다. “저…우동 한 그릇이라도 괜찮나요?” 여주인은 “그럼요. 2번 테이블 우동 한 그릇”을 외쳤고 남편은 국수 1인분에 반 사람 몫을 더 얹어 주었다. 모자는 150엔을 지불하고 “맛있네요, 엄마도 드세요.”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떠날 때 주인은“안녕히 가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했다. 또 1년이 지나고 그들은 왔다. 이번에도 1인분을 시켰다. 여주인은 “여보, 서비스하는 셈치고 3인분 줍시다.” 그러자 남편은 “안 돼, 그러면 오히려 신경 쓰게 돼.” 무뚝뚝한 것 같던 남편의 말에 부인은 놀랐다.
“당신도 좋은 구석이 있군요.” 어머니와 아들들은 만족해하며 “금년에도 북해정 음식을 먹을 수 있었네요.” 주인부부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국수 집 부부는 해마다 그 시간이면 초조했다. 이젠 예약석을 표시해 놓았다. 어머니와 아들들은 왔고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들이 “2인분 시켜도 될까요?” 물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버지 돌아가시고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너희들이 도와주어 고맙구나 큰애는 신문도 돌렸고…. 그리고 둘째가 쓴 글 <우동 한 그릇> 이 교내 신문에 실린 것도 고맙구나.”
그 글에는 그들 모자가 북해정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들을 때마다 “힘내세요! 행복해 지세요.”로 들렸다고 했다.
14년 후 의사가 된 아들과 은행 근무하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우동 한 그릇에서 힘을 얻어 열심히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세상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깨우쳐 준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이나 사주팔자에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다. 무엇에라도 희망을 걸고 싶어 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막연한 희망이다. 그리스도인이 갖는 희망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베드로 사도는 ‘산 소망’, ‘영원한 희망’이라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희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응답이다.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 (Samuel Ullmann) 의 ‘Springtime’ 이라고 하는 유명한 시가 있다. 그 일부분이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으로만 사람은 늙지 않는다./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영력을 잃으면 영혼이 시든다./그대가 가지고 있는 믿음만큼 젊고 의심만큼 늙는다./자신감만큼 젊고 두려운 만큼 늙는다./ 희망만큼 젊고 실망만큼 늙는다.
새해엔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 때문에 더 젊어지고, 더 행복하고, 더 힘차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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