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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사람과 겉 사람
안병양 2007-04-07 추천 0 댓글 0 조회 493
속 사람과 겉 사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몸짱이다’ 또는 ‘얼짱이다’ 는 말이 유행?가 되다시피 했다. 여기서 ‘짱’이라는 말은 ‘최고’ 또는 ‘최상’ 의 의미를 지닌 말로써, 청소년들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사용되어 왔던 속어였다. 특히 몸매가 준수한 사람을 몸짱이라고 하고,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을 얼짱이라고 한다.
그러나 몸짱이나 얼짱이 그리 대단한 것이던가? 사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일수록 겉을 보고 판단하곤 한다. 또한 겉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겉치레를 중요시 하는 사회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 별 볼일 없는 사회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기에, 같은 한국인으로서 매우 수치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쎙떽쥐뻬리(Saint-Exupery)는 어린왕자에서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갈수록 겉만 보고 판단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여기서 어른이란 순수성을 잃어가는 부류의 사람들을 싸잡아서 한 말이다. 따라서 어른이 많은 사회일수록 노화된 사회요, 고령의 사회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옛말에 어린 아이가 노인처럼 행동하면 빨리 죽고, 노인이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또한, 성경에는 ‘겉 사람은 날로 후패(朽敗)할지라도 마음은 날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다.’ 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화된 사회는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몸을 전혀 돌보지 않아 균형을 잃어가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몸을 가꿔보기에 좋다면 물론 좋을 것이다. 또한 못생긴 얼굴보다는 잘 생긴 얼굴이나 예쁜 얼굴이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몸매도 적당하여 보기에 좋은데다가, 또한 얼굴도 잘 생겨 보기에 좋고, 그 위에 마음까지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얼굴이나 몸매가 아름답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까지도 아름답다고 볼 수는 없다. 이는 약자(弱者)의 변명이나 합리화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몸을 가꾸는 것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마음 씀씀이부터 고쳐나가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소위 얼짱이 되고 싶어 성형 수술을 통해 얼굴을 뜯어 고치고, 지방 흡입술을 통해 몸매를 가꾸었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몸짱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얼짱은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쁜 얼굴에 비해 나쁜 성품므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꼴불견이 아닐 수 없고, 도리어 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키는 크고 날씬하지만, 만일 그가 하는 행동이 저질적이라면, 그런 경우 누가 과연 그런 자를 아름답다고 할 것이겠는가?
자기의 몸이 아름답다고 확신을 하고, 그러한 아름다운 몸의 각선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심하게 노출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을 보고 아름답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자는 오히려 추할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자기의 미를 다소곳이 감추기 위하여 매우 정숙하고도 품위 있게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 있다면, 누군들 그런 자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미는 감추면 감출수록 아름답게 여겨지고,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도리어 추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미는 은근함에 있고, 은은함에 있으며, 다소곳함에 있고, 잔잔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장된 미일수록 요란하고, 소란스러우며, 진실성이 없고, 겉만 번드르 하다. 따라서 미 중에 최고의 미는 친절함 속에서 드러나고, 겸손함 속에서 도출되는 법이다. 미는 가장(假裝)할 수 있으되 친절은 가장할 수 없으며, 미는 속일 수 있으되 겸손은 속일래야 결코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겉뿐만 아니라 속까지 아름다운 꽃만이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듯이, 겉뿐만 아니라 속까지 아름다운 사람만이 언제나 진실할 수 있는 법이다.
얼굴이나 몸매는 아름다우나 진실성이 없는 사람을 삼가 조심할 일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굴 먼저 보지 말고 그 사람의 마음부터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누가 되었든지 간에 마음부터 보고, 얼굴은 그 다음에 보라는 이야기이다. 얼굴을 먼저 보고 마음을 나중에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낭패스러운 일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마음을 먼저 보고 얼굴을 나중에 보면 결코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게 될 것이다.
자기의 외모를 믿고 남을 속이는 사람은, 설사 그가 매우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매우 악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설사 거짓말을 하더라도 외모만 준수하다면 모든 게 용서될 수 있다.’ 고 말하기도 한다. 또는 ‘설사 진실하다고 할지라도 외모가 준수하지 못하다면 절대로 용서가 되지 않는다.’ 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자는 언젠가슴 그런 자들에게 속아 넘어가게 되어 반드시 자기의 발등을 찧으며 후회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외모가 준수한 사람이 남을 속일수록 더 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외모가 준수하지 못한 사람이 실수로 남을 속인다면 밉지나 않을 것이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 역시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 있는 사람일수록 외모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외모의 준수퓇에 대해 감탄하는 법이 거의 없으며,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최고의 만남으로 여기곤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겉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로되, 그에 비하여 내면은 영원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겉치레를 중요시 여기는 자는 오며가며 잠깐씩 만나는 친구로 사귈 수는 있어도, 영원을 약속하는 벗으로 사귀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겉치레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은 적당한 농담을 하는 친구로 사귈 수는 있어도, 날밤을 세워가며 진솔한 대화를 하는 친구로 사귀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겉은 준수하나 내면은 전혀 진실하지 못한 사람과 벗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어린 아이를 예뻐하다가 결국은 코 묻은 밥을 먹게 되고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뿐이기 때문이다.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몸을 가꾸는 것보다 소중하다. 마음을 바르게 먹는 것은 수백만 원이나 수천만 원을 들여 성형 수술하는 것보다 몇 백배 낫다. 불우하고도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과 관심을 베푸는 자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자보다 더 멋있는 사람은 없다.
겉은 바꾸었으되 속을 바꾸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겉만 보고 자기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면, 그런 자는 지금 껍데기에 속고 있는 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겉은 바꾸지 않았더라도 매일 마음 씀씀이를 바로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런 자는 가히 군자(君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겉을 보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 중심만 바라보며 사는 자 역시 가히 현자(賢者)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겉도 속도 보지 아니하고 그 누구에게든지 차별하지 않는 자야말로 능히 성자(聖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자유문예'에 실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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