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애 (2010.9.19)
우리나라 민화 가운데 가을 추수가 끝난 후 형과 아우가 밤중에 볏단을 서로 날라다 주다가 길에서 만나 부둥켜 운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형제애에 관한 이야기의 원조는 유대인의 탈무드에 나온다.
두 형제가 다투고 있었다. 둘 다 어느 쪽의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니고 죽은 어머니의 유언을 둘러싸고 다투고 있었다. 유언의 해석에는 제각기 일리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독일, 러시아, 시베리아, 만주를 거쳐 전쟁 중에는 이리저리 도망쳐 다녔으므로 대단히 의가 좋은 형제였는데도 이 유언을 둘러싼 싸움에서 서로 상처를 입히고 반목했기 때문에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서로 말도 하지 않고 같은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도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이 형제들은 따로따로 한 랍비를 찾아와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잃은 것을 한탄했다. 이 랍비는 이 두 형제가 서로 싸울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랍비는 아메리칸 클럽의 파티에 강사로 초빙되자 주최자에게 이 두 형제를 서로 알지 못하게 파티에 초대하도록 부탁했다. 이 두 형제는 평소 같았으면 얼굴을 맞대면 이내 헤어져 버렸지만 초대자의 체면도 있어서 돌아가지 못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랍비는 인사를 끝내자 탈무드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 때 이스라엘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결혼하여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다. 동생 쪽은 아직 독신이었다. 두 사람 모두 부지런한 농부였는데 아버지가 죽자 재산을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확한 사과나 강냉이는 서로 공평히 이등분하여 제 각기 곳간에 간수했다. 밤이 되자 동생은 생각했다. ‘형님은 형수와 아이들이 있어서 대단히 고생이 될 터이니 내 몫을 좀 갔다가 주자.’ 그리고 자기 과일의 상당량을 형의 곳간에 옮겨 놓았다. 형은 형대로 생각했다. ‘나는 이미 가정이 있지만 동생은 결혼도 해야 하니까 더 필요하겠지.’그리고 자기 곳간의 강냉이와 사과를 동생의 곳간에 옮겨 놓았다.
아침이 되자 형제가 잠을 깨어 자기 곳간에 가보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아직도 많은데 더 가져다주어도 되겠어.’ 그날 밤도 또 그 다음날 밤도 사흘 동안 똑 같은 일이 되풀이 되었다. 그 다음 날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곳간으로 나르던 도중에 중간에서 마주치고 말았다. 그래서 두 사람 다 서로를 얼마나 생각했던가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운 장소가 예루살렘의 가장 고귀한 장소라고 오늘날에도 전해진다. 그날 그 랍비는 가족 간의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했고 두 형제의 오랜 반목도 얼음 녹듯이 없어졌다.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형제애 스토리이다.
미국에 ‘생명을 주는 인큐베이터’라는 제목으로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한 병원에서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늦게 태어난 아이가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 심장 박동이 고르지 않고 약하여 이틀 정도 지나면 죽을 것이라 했다. 그때 한 간호사가 각각 다른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보며 담당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 쌍둥이를 한 인큐베이터에 같이 있게 하면 어떨까요?” 병원 규칙에는 어긋나는 일이었다. 의사는 “태중에 같이 있었으니 같이 있는게 나을까? 어차피 희망이 없으니…….” 두 아기를 한 인큐베이터에 넣자 형이 팔을 뻗어 동생을 안았다. 그러자 동생의 심장 박동이 서서히 정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생이 살아났다.
어렸을 적에는 형 먼저 아우 먼저 그랬는데 이해관계로 형제의 우애를 잃고 살아가기 쉽다. 어릴 적 그 마음이 한결 같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든 불행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추석은 유대감을 두텁게 하고 정을 나누기 좋은 절기다. 만남을 통하여 형제애가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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