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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입니다
노회 교육부 2010-06-07 추천 0 댓글 0 조회 1708

2010.6.20.주일낮

위기는 기회입니다

출애굽기 14:1-14 / 450, 445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내인생 걸음을 인도하시다면 어떤 길로 인도하실가요? 그곳은 빛과 사랑이 넘쳐서 기쁨과 행복이 있는 길, 성공과 축복이 넘치는 승리의 길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길이 위험한 길이고, 실패가 기다리고 있고, 무서운 위기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위기라는 말은 위험이란 말과 기회란 말이 합쳐져서 된 말입니다. 때문에 위기상황에서 더욱 큰 위험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고 지혜로 놀라운 기회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으로 출애굽을 했습니다. 바로와 애굽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마치 특공대나 된 것처럼 대열을 지어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출애굽 합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그들을 앞장서 인도했습니다. 안심하고 희망찬 행진을 계속 했습니다. 어디에 도달했습니까?

오늘 본문 2절입니다. 출 14:2,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로 인도했습니다.

이 상황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나아왔더니 앞에는 홍해바다가 넘실대고 가로막혀 있습니다. 좌우엔 높은 산이 솟아 있는 계곡으로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막다른 골목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입니다. 때마침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진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면초가, 진퇴양란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하나님의 전술이 도대체 왜 이런 모양일까요? 이스라엘은 하루아침에 독안에 든 쥐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예 이스라엘에게 대패하고 자존심이 몹시 상해 있던 바로... 그러면 그렇지 바보같은 놈들, 선발된 병거 600대, 애굽의 모든 병거를 총동원합니다. 애굽의 모든 장수 지휘관들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추격하게 합니다. 저 노예들을 다시 끌고 오너라. 다시 끌고 올 수 없다면 모두 광야에서 죽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난 위기상황이었습니다.

 

이 길은 모세가 선택한 길이 아닙니다. 백성이 원했던 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입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해안길, 잘 닦여진 도로로 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을 선택할 때 애굽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기대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엘리야처럼, 구름에다가 200만 백성을 몽땅 태워서 둥실 하늘로 띄워 가나안 땅에 척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토록 어리석은 길을 선택하다니? 하나님도 별 수 없구나! 바로는 얼마나 비웃었을까요? 그래서 일순간에 몰살시킬 수 있을 줄 알고 '저 바보들,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구나!' 쾌재를 불렀습니다. 군대를 보내놓고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고 오겠지. 아마 술잔치라도 벌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이런 사면초가, 진퇴양란 상황을 만나본 적이 있으십니까? 나는 말씀대로 순종하려 애를 썼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코너에 몰립니다. 가정에 위기가 옵니다. 인간관계가 깨져버립니다. 시험에 시험이 홍해 앞바다처럼 내 앞에 넘실대며 찾아옵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믿지 않는 가족들 앞에서, 직장 동료들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선언했지요. 난 예수를 믿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술잔을 권유하면 나 교회 다닌다고 술잔 거절하고, 담배 갑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습니다. 금방 신학교 가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위기를 만나도 순교자라도 될 것 같았습니다. 저런 사람 몇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화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애굽을 떠났다고 바로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애굽의 공격,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완전자유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온갖 걱정근심으로부터 해방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사실을 모르면 조그만 위기를 만나도 난 예수를 믿었는데 왜 이런 위기를 만나지? 기도하고 예배드렸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내 앞에 닥쳐오지? 낙심하기 십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도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위기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것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예수 믿고 살아가는 신앙여정 광야의 여행도 모두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위기를 만난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I. 위험은 기회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첫 번째 만난 위기는 홍해위기였습니다.

 

이 홍해의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11절 12절입니다.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애굽에 공동묘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 죽게 하느냐? 평생 자손대대로 애굽에서 종살이나 하다가 죽게 내버려두지......."

이 태도, 과연 어린양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얘기입니까? 10가지 재앙을 보고 나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말이냐는 것입니다. 당당히 폼잡고 출애굽한 이 사람들이 할 말이었습니까?

 

작은 시험 앞에서 걸핏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는 모습 - 어디서 본 듯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습입니다.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다. 교회 안가면 그만이지 뭐!!...』 가끔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무기가 있습니다. "나 교회 안 나가!" 교회 사역을 포기해 버립니다. 직분을 집어던져버립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사단의 공격에 노출되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실망시킵니다. 실족케 하는 죄를 범합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를 보더라도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실망합니다. 비전을 상실합니다. 축복을 잃어버립니다. 우리 아버지,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홍해의 위기? 나는 아직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불평을 멈추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섭리는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 본문 4절에서 이 사건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얻고, 애굽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위기를 만났다고 한다면 그 위기 상황속에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받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지 나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역전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넘어지는듯 하지만 역전승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에스더서"가 나옵니다. 이 에스더서는 정경으로 자리 매김을 할 때에 대단히 논란이 많았던 책입니다. 왜냐하면 에스더서 첫장부터 마지막절까지 우리가 읽어보더래도 "하나님"이란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 성령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야훼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란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이것을 과연 성경에다가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 가장 많이 기도하게 만들었고 가장 많이 격렬한 논쟁을 만들었던 책이 에스더서입니다.

그런데 에스더서를 앞에 놓고 성경학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신구약 66권 가운데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역사를 몰아가는 하나님의 손을 맛볼 수 있는 책이 에스더서란 말입니다. 하나님이란 단어가 안 나옴에도 불구하고 성령이란 단어가 안 나옴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도우심의 강력한 맛을 볼 수 있는 책이 에스더서입니다.

하만이란 총리가 유다민족을 다 몰살시키려고 철저하게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걸림돌이 된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서 높이 나무를 세웠습니다. 거기다 매달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유다 민족이 망했습니까, 하만의 족속이 망했습니까?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서 높이 높이 세웠던 장대 끝에 모르드개가 매달렸습니까, 하만이 매달렸습니까? 여러분 임금이 타고 다니는 버금수레에 하만이 앉으리라고 계략을 세웠지만 거기에는 모르드개가 앉아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당하는 위기상황의 대답입니다. 위기상황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넘어져도 일어나는 오뚜기입니다. 실패하는 듯 하지만 반드시 역전승합니다.

 

II.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당하는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것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할 때 이스라엘은 몹시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우리 앞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볼 것인가?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치는 진정한 리더가 될 것인가? 두 길이 있게 마련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뒤에서는 애굽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14:15절에 홍해는 갈라졌습니다. 출 14장 19절이하에 보면 구름기둥이 뒤로 물러가 애굽 군대가 달려오는 것을 막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에 가려 달려오는 애굽군대를 잘 볼 수 없었습니다. 희미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달려와 우리를 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두려움에 떨었던 것입니다. 대신 구름기둥, 불기둥은 선명히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그 구름기동, 불기둥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 구름기둥을 보지 못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원수, 애굽만 보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두려움"이란 단어가 여러번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10절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13절 모세의 설교 가운데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 마지막절에 가서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 경외한다는 말이 두려움과 같은 말입니다.

 

문제는 위기상황을 두려워 할 것이냐?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이냐의 갈림길입니다. 문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기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이냐? 우리가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루즈벨트의 말처럼 "문제를 문제시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를 문제시하면 문제는 문제가 되는 거예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나는 승리한다. 나는 성공한다. 다시 일어난다. 도전한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나를 붙들고 계신다.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신다.” 이 사실을 믿고 선포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이 공산치하에서 감옥에 갇혀서 죽을 고생을 합니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지금 옆에서 모진 고난을 겪으며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처절한 소리가 매일밤 들려옵니다. 그러니 언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할는지, 언제가서 피를 토하고 죽을는지 알 길이 없을 때 성경말씀을 조용히 펼쳐듭니다. 그때 성경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도대체 몇 번이 나오는가를 세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성경에 365번 나오더래요. 왜 365번 나오는가 생각했더니 1년 365일 두려워하지 말라. 매일같이 두려워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만 1년 365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로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더 읽었어요. 한번 더 읽다보니까 366번 나오더래요. 한번 빠뜨린 거예요. 하나님! 1년 365일 매일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받아들였는데 왜 366번 나옵니까? 그랬더니 “윤년도 있다” 그러더랍니다. 그해 2월달이 29일이라 366일이예요. 아하 하나님께서는 이걸 빠뜨렸다가 윤년인줄 알고 366번을 기록했구나. 렘브란트 목사님의 책에 보면 그런 기록이 나옵니다.

 

심리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인간의 마음속에는 포비야 - 두려운 감정이 75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이 두려워하는 감정, 괜히 불안해 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이 감정이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심장질환과 정신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사람은 초라해지고 비굴해 집니다. 사태를 직시하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담대한 결단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모든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어집니다.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어떤 아가씨가 결혼하여 신혼첫날밤을 보내려고 하니까 괜히 두렵더랍니다. 주례 목사님이 호텔에 전보를 보냈습니다. 우체국 직원에게 전화를 합니다. 요한1서 4장 18절을 넣어서 전보를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요일 4:18절 말씀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체국 직원이 요일 4:18절을 요한복음 4장 18절을 친거예요.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여러분, 요한복음이 아니라 요한 1서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느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딤후 1장 7절 말씀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모세는 출애굽기 14장 13절에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III.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구름만 바라본 모세의 외침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는 가만 서라!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추격하는 애굽군대 앞에서, 분노하며, 두려워 떨며 소리지르는 백성들을 향하여 외친 모세의 말은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어떻게 이 모세는 이처럼 담대한 외침을 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는 달려오는 애굽의 600 승 병거를 보지 아니했습니다. 분노와 혈기로 넘치는 백성들의 눈빛도 보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을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백성들은 넘실대는 홍해를 보았습니다. 뒤에서 추격하는 애굽의 병거소리를 들었습니다. 좌우로 도망갈 수 없는 높은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나 문제는,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보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말씀이 보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면 이깁니다.

 

인생 살아가다 보면 어려움을 만납니다. 문제가 당연히 보이지요. 그러나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면, 내게 임재하시고,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치료하시는 영광의 구름 세키나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어려움에 빠지게 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내가 실패했다고 얘기합니다.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환경의 위기가 아닙니다. 인생의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니라 심령의 위기요, 믿음의 위기요, 시선의 위기입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고, 봐야 할 것은 보지는 못하는 위기란 말입니다. 시선의 위기입니다.

 

같은 13절, 14절에 "가만히 서라"는 말이 나오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 말로는 비슷합니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서 전혀 다른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서라"는 말은 몸가짐, 신앙적 자세를 말합니다. 서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마음가짐, 말, 입술을 말합니다. 입을 다물라. 떠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극 같은 것을 보면, 왕이 말하지 않습니까? “경은 입을 다물라” 그러면 신하들은 꼼짝 못하는 것이지요!

 

하나님만 바라보라. 입 다물고, 그분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입 다물고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이스라엘의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이 싸우셔서 이기는 전쟁이었습니다.

영적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에 매달았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린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자의 입을 막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이후 지금까지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시고, 하늘을 만드실 때, 인간이 무엇을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분이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그리고 부활하실 때, 그분이 승천하실 때, 그분이 천국을 만드실 때, 우리가 무엇을 했나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00%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인생 살아가다가 어려움에 부딪히고 위기를 만난다 할지라도 100%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과 능력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 믿고 기다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대신 싸우시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싸움에, 영적인 싸움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뚜기처럼 일어난다. 역전승한다. 이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인들의 싸움은 싸워서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이겨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앞에서 넘실대는 홍해는 갈라 길을 내시고, 뒤에서 쫓아오는 애굽군대는 구름기둥으로 막아주셨습니다. 드디어 동풍이 불어서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동풍은 열풍입니다.

이 사건을 신약성경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린도전서 10장 1절 2절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바다에서 세례 받았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430년동안 애굽의 종노릇했습니다. 바다를 건넌 다음 뒤돌아보니 자기를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던 애굽군대가 모두 시체가 되어 떠오르고 있는 것을 보며, 그들은 얼마나 커다란 해방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얼마나 놀라운 자유를 맛볼 수 있었을까요? 지금까지는 애굽의 명령에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리라. 세례가 이것입니다. 이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정욕,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가시덤불들,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악한 권세들, 세상의 무서운 욕심들, 쾌락들, 일락들 이런 모든 것들이 바다 위에 둥실 떠올라 시체가 되어있을 때에, 이제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추격을 받아도, 어떤 위험한 공격을 받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한방에 원수를 격퇴하십니다. 원수의 접근을 막으십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위기는 기회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이 싸워주실 기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입니다. 내 신앙이 자랄 기회입니다. 더 큰 복을 받을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위기는 기회가 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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